강치원의 토론이야기 6
중요한 것은 머리맡에 두라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두괄식을 강조하고 있는 서적, 카페나 블로그가 많다. 논술과 면접시험에서 뿐만이 아니다. 프레젠테이션이나 성공적인 화법, 그리고 보고서와 자기소개서, 신문기사의 작성법, 나아가서 영작이나 영문독해, 비즈니스 이메일 작성요령, 심지어 검색엔진에 쉽게 노출되는 법에 이르기까지 두괄식이 강조된다.
지나친 강조는 그만큼 어려운 연유에서일까? 두괄식으로 말을 못하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①무용담을 자랑하고 싶거나 아는 것이 많아 청자를 무시하기 때문에, ②가슴에 맺힌 한이 많거나 매사에 진지하기 때문에, ③분명하게 말하면 거부당하거나 싸우게 될까봐 먼저 핑계를 대기 위해서, ④시간을 끌어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⑤준비가 부족해서 정리가 안 되었거나, ⑥주의가 산만한 경우 등이다. ①은 남을 가르치려 드는 교수, ②는 고생을 많이 한 정치인, ③은 미숙한 보험설계사, ④는 국회 청문회, ⑤는 구술면접, ⑥은 화자가 피곤하거나 청자의 태도 등 환경이 좋지 못할 때 종종 볼 수 있다. 모두 대체로 자기비하나 보호본능에서 비롯된다.
어렸을 때 중학교 입시를 치르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설레는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그날 밤 나는 “중요한 것은 머리맡에 두라”는 선생님 말씀대로 책과 노트를 머리맡에 쌓아 놓고 잠을 잤다. 그때부터 중요한 것은 발치가 아니라 머리맡에 둔다. 내 사전에는 미괄식이란 없다. 화법이론, 작문이론을 새로 세워보자. 서술에는 ①두괄식, ②양괄식, ③병렬식, ④단계식이 있다. ①은 몸통을 먼저 말하고 깃털을 부연 설명하는 방식이다. ②는 “요지는, 왜냐하면, 예컨대, 그래서” 순서로 말하는 방식이다. “그래서”는 단지 요약이나 반복이 아니라 진전된 결론이나 전망을 담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글쓰기에서 양괄식은 시간낭비다. 다만 말하기에서는 이미 언급한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다.
여러 가지를 나열하는 ③에서도 반드시 개요부터, 그리고 중요한 것부터 언급한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고, 유기적 논리적 순서에 따라 단락으로 나눠 언급해야 할 경우는 ④다. 이때 단락마다 소주제문이나 핵심은 앞에, 보충문장이나 부연설명은 뒤에 덧붙인다. 단락에는 3단식으로 문제(현재)-원인(과거)-계획(미래), 사실(과거)-가치(현재)-의지(미래), 4단식으로 기-승-전-결, 5단식으로 도입-진술-논증-반론-결어, 발단-갈등-위기-절정-결말 등이 있다.
두괄식은 ①사람이 많거나, ②시간이 부족하거나, ③공식적인 자리, ④윗사람이나 연상(聯想)이 빠른 사람에게 말할 때, ⑤모임에서 자신의 발언순서가 마지막 무렵일 때 중요하다. 예배시간에 기도와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 단계식은 ①사람이 적거나, ②시간이 많거나, ③사적인 자리, ④아랫사람이나 연상이 늦은 사람에게 말할 때, ⑤자신의 발언순서가 시작 무렵일 때 필요하다. 이 때 단계식을 모르면 냉정하거나 권위주의적이고, 생뚱맞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연애를 잘하려거든 뜸을 들일 줄 알아야 한다. 전화통화를 통해 두괄식과 단계식을 연습하라.
편지가 아니고 논술이라면, 늦은 밤 음악방송이 아니고 인터뷰나 토론이라면 두괄식이 좋다. 채점자와 청취자는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우리말과 달리, 주어 다음에 바로 동사가 뒤따라오는 영어 공부는 더 더욱 두괄식이 좋다. 자신의 사전에서 미괄식을 지워버려라. 때로 단계식이 허용되어도 그 기본은 두괄식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