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 토론이야기 2
“왜냐하면, 예컨대”를 하루에 백 번 정도씩
면접구술 시험이나 토론에서 말을 횡설수설하거나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이 말하다가 저 말하고, 저 말하다가 이 말하고. 말하는 사람도 갈피를 잡지 못하니 듣는 사람은 오죽하랴. 아니면 자초지종 너무 많은 말에 핵심이 묻혀버리기 일쑤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요령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두괄식이 좋다. 명쾌해 보이기 때문이다. “두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첫째로, 둘째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왜냐하면, 예컨대, 그래서...” 같은 두괄식이지만, 분석적으로 쪼개서 말하는 방식 (전자)보다 종합적으로 논증하는 방식 (후자)이 훨씬 더 논거의 설득력이 크다. “요지”는 청중의 가치관에 기초를 두는 동기적 논증 (motivational arguments)에, “왜냐하면”은 사물의 논리적 관계에 기초를 두는 본질적 (substantive) 논증에, “예컨대”는 자료의 신빙성에 기초를 두는 권위적 (authoritative) 논증에 관련된다.
보통 “요지”를 먼저 말하면, 주장과 견해가 분명하게 전달된다. 이렇게 해야 듣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흥정이나 협상에 임해서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라는 뜻은 아니다. 또 좌우로 치우친 극단적 강경발언을 하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얼버무리지 말라는 말이다.
“왜냐하면”은 이유나 근거를 대는 말이다. 어떤 심리학 실험이 있다. 복사기 앞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새치기를 요청하는 실험을 세 가지 방식으로 했다. “제가 복사기를 먼저 좀 사용하면 안 될까요?” 첫 번째는 “왜냐하면, 지금 제가 굉장히 바쁜 일이 있거든요.” 두 번째는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았다. 세 번째는 “왜냐하면 제가 지금 꼭 복사해야 하거든요.” 세 번째 경우의 이유는 이유 같지도 않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재미있다. 막연한 이유를 댄 세 번째 경우, 분명한 이유를 댄 첫 번째 경우에 못지않게 새치기 승낙을 많이 얻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왜냐하면”의 위력이다.
말을 할 때 “예컨대”로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자료와 사례를 제시하면 유식해 보인다. 사례는 추상적이 아니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복잡한 것은 단순하게, 어려운 것은 쉽게 풀라는 말이 있다. 그 열쇠는 구체적 사례에 있다. 때로 사례는 두 개도 필요 없다. 하나만 들어도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그래서”를 통해 이미 말한 내용을 단지 요약 (summary)하여 되풀이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보다 진전된 내용으로 결론 (conclusion)을 내릴 수도 있다. 결론은 요약보다 어렵다. 그래서 요약에 그치지 않고 결론까지 이끌어 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말을 할 때뿐만이 아니다. 질문을 할 때도 “왜냐하면, 예컨대”를 사용하는 것은 아주 요긴하다. “왜냐하면, 예컨대”가 답변을 좋게 만들듯이 “왜냐하면? 예컨대?”는 질문을 좋게 만든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서 대답하기 곤혹스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고의 대답은 정답에 있기보다 되묻는 질문에 있다. “너는 왜 그렇게 기발한 질문을 하게 되었니?” 또는 "예컨대 뭐가 있을까?“라고.
자. 오늘부터 거울 앞에서 큰 소리로 하루에 백 번 정도씩 외쳐보자. “요지는, 왜냐하면, 예컨대, 그래서...” 말과 사고는 동시에 작동한다. 입에서 익숙하면 머리에서도 익숙해지는 법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