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 토론이야기 1
토론, 절차가 있는 대화
보통 토론하면 말싸움을 연상하기가 쉽다. 남의 말허리 꺾기,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눈 부라리며 핏대 세우기, 이미 한 말 되풀이하기 등. 그래서 아예 TV토론을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에게 토론문화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토론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토론 (討論)과 토의 (討議)의 한자어 토(討)는 군사적 용어인 토벌(討伐)의 토와 같이 “쳐부수다”의 뜻을 지닌다. 서양의 논쟁 (debate)과 토의 (discussion)의 라틴어 어원인 battere와 cutere 역시 잘게 부수다, 깨뜨리다의 뜻이다. 이렇게 보면 일단 토론은 공격적 분석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토론을 말싸움의 논쟁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같은 오해를 떨쳐 버리지 않고서는 토론을 잘 할 수가 없다.
토론은 좁게는 논쟁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토의를 포함하며, 더 넓게는 대화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화와 토론”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하기 (쌍방적 의사소통)이다. 스피치나 연설 같은 혼자만 말하기 (일방적 의사소통)와는 다르다. “대화와 토론”에서 대화는 절차가 자유로운 비공식적인 것이고, 토론은 절차가 있는 공식적인 것이다. 토론은 다시 토의와 논쟁으로 나뉜다. 토의는 대내적으로 이루어지는 협의적 (協議的) 토론을, 논쟁은 대외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격적 토론을 의미한다. 우리가 토론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그 공식적인 절차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토론은 아주 쉬워진다.
진짜 토론을 잘 하는 사람은 논쟁뿐만이 아니라 토의나 대화까지 잘할 줄 안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대화와 토의와 논쟁이 모두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과 대답을 잘 하는 것, 그것이 토론을 잘하는 방법이다.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라는 역설적인 말이 있다.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이,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이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법이다. 따져 보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질문의 수준을 높여 가는 것을 의미한다.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도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듣고 읽으면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질문과 대답의 모범은 소크라테스와 공자에게 있다. 플라톤과 달리 저서는 없지만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잘했고, 맹자와 달리 강의를 못해도 공자는 대답을 잘했다.
토론을 잘하면 논술도 잘할 수 있다. 논술이 기술 (記述)과 구술로 이루어짐을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 말하기를 소홀히 한 논술은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글쓰기로 마무리 되지 않은 토론 역시 반쪽에 그칠 공산이 크다. 둘 다 말과 글로 펼쳐지지만, 토론은 논술에 비해 말하기의 비중이 크다. 논술공부에 앞서 토론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 학습의 순서상 말하기가 글쓰기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끝.
출처: 중앙일보, 강치원
